워크래프트에 나오는 종족들 자체는 사실 대부분 반지의 제왕이나 던전 오브 드래곤과 같은 판타지 작품에서 다루어진 적이 있는 종족들입니다.
인간이야 당연하고 오크, 트롤, 엘프, 드워프 등의 종족들도 종족 자체는 그렇게 새로울게 없는 종족들이예요.
던전앤 드래곤의 선택 화면. TRPG 던전앤 드래곤은 RPG의 기틀을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톨킨 이래로 다른 판타지에서는 이러한 종족들이 비슷비슷한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에 반해
워크래프트 세계관에서는 독특한 개성을 지닌 종족들로 재해석되고 있습니다.
특히 호드의 주축이라고 할 수 있는 오크와 호드에 가장 먼저 편입된 트롤 같은 경우 그러한 재해석이 가장 두드러지는 것 같아요.
영화 '해리포터'의 트롤(위)와 와우의 트롤(아래). 우선 외모부터 상당히 다릅니다.
오크만 해도 반지의 제왕에서는 무작정 흉측하게 생긴 악의 종족 정도로 나오지만
워크래프트의 오크는 명예를 중시하고 정령을 통해 대자연과 소통할 수 있는 존재이지요.
트롤같은 경우에도 기존의 판타지들에서는 멍청하고 힘만 센 괴물 정도의 이미지이지만
워크래프트에서는 아제로스 최초의 지성체 중 하나로 그 위상이 달라져요.
오늘 이야기 할 인물은 바로 이 트롤 출신의 대족장, 볼진입니다.
1. 최약체 종족, 검은창 트롤
사실 다른 판타지 영화들에서 보던 모습보다야 나아졌다고 하지만,
워크래프트의 트롤도 알고보면 답답하기 그지 없는 종족입니다.
아제로스에 최초로 나타난 지적 생물체 중 하나로 이후 여러 분파로 나뉘고,
이들 중 어둠트롤은 영원의 샘에서 마력을 받아 나이트 엘프로 진화하게 됩니다.
그리고 나이트 엘프 중 하이 엘프와 나가가 등장하게 되니
사실상 엘프 계통의 조상쯤 되는 종족이 바로 트롤입니다.
트롤이 진화하여 나이트엘프가 되다니. 역대급 정변이네요.
이렇게 보면 뭔가 고대 종족으로서 신비로운 이미지를 풍기는 것 같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다른 종족들에 비해서 진화가 덜 되었다고도 볼 수 있는 종족이예요.
그러다 보니 트롤이라는 종족 자체는 입지가 매우 약합니다.
그런데 종족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입지가 약하면 외교라도 잘 해서 다른 종족들과 관계라도 원만하게 만들든지
그것도 아니라면 트롤끼리 똘똘 뭉쳐서 세력을 키우든지 해야 할텐데
트롤은 그 두 가지 전부를 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일단 태생적으로 호전적인 종족이다 보니 호드에 가입하기 전 적대적이지 않은 종족들이 없었고,
숲트롤의 위대한 영웅 줄진이 숲트롤들을 규합하여 오크와 함께 싸운 적도 있었지만
그 이후로는 트롤 내부에서도 부족간의 반목으로 인해 힘을 하나로 규합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러다 보니 아제로스에서 트롤들의 입지는 점점 약해질 수 밖에요.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볼진은
이렇게 약한 트롤 중에서도 가장 입지가 약한 부족인 검은창 부족에서
부족장 센진의 아들로 태어납니다.
볼진의 아버지 센진. 센진의 죽음과 검은창 트롤의 호드 합류는 워크래프트 데모 미션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당시 검은창 부족은 다른 트롤 부족들과의 세력싸움에 밀려서
원래 서식지인 가시덤불 골짜기에서도 쫓겨나 혼돈의 소용돌이 근처 섬에서 근근히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검은창 부족은 다른 트롤들에게도 약골이라고 무시받는 일이 많지요.
하지만 그 섬은 바다마녀의 공격을 받고 있어 결코 안전하다고는 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마침 동부 왕국을 떠나 칼림도어로 향하던 스랄 일행이 섬에 불시착한 것을 인연으로
호드의 도움을 받아 바다마녀의 공격을 막아내지만
그 과정에서 부족장 센진은 죽고 섬은 가라앉아 버립니다.
결국 검은창 부족은 호드에 합류하여 칼림도어로 향합니다.
2. 로아의 시험
당시 볼진은 친구 잘라제인과 함께 트롤들이 섬기는 신인 로아의 시험을 받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아버지 센진의 뒤를 이어 검은창 부족을 이끌게 된 볼진. 가장 젊어보이는 이미지입니다.
그 때 로아는 볼진에게 검은창 부족 트롤이 오크, 타우렌과 함께 칼림도어에 있는 환영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볼진에게 왜 우리 부족을 남의 아래로 이끄느냐고 질문합니다.
"왜 우리 부족을 남의 밑으로 이끄는가? 혼자 명예롭게 싸우고, 혼자 명예롭게 죽는 게 훨씬 나은 길인데?"
그 질문에 볼진은 답합니다.
"아니, 검은창 트롤은 항상 자유롭고 명예로워야 한다. 하지만 자유롭기 위해서는 살아남아야 한다. 죽으면, 지는 거다.
우리의 때를 기다리며 참는 것이 낫다. 우리는 고대의 종족이다. 우리는 인내한다."
그리고 밤에 또 다른 로아가 나타나 두 가지 길을 보여주며 하나를 선택하게 합니다.
하나의 길에는 눈부신 왕좌에서 호의호식하며 금 사슬로 묶여 있는 자기 자신이 보였고
나머지 하나의 길에는 상처투성이로 싸움을 계속하는 자신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볼진은 대답합니다.
"위대한 로아여, 이게 시험이란 말인가? 너무 쉽군. 나는 자유를 선택하겠다.
싸우고 투쟁하고, 어쩌면 평생 행복을 찾지 못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난 자유를 택하겠다."
로아는 대답합니다. 선택이 시험이 아니라 잠시라도 망설였다면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을 거라구요.
다시 말해 볼진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고난 속의 자유를 택한 것입니다.
그리고 로아는 또 다른 미래를 보여줍니다.
이후 가로쉬가 케른을 죽였을 때, 검은창 부족을 이끌고 떠나야 하는데
생존을 위해 선택했던 호드를 저버리고 동맹을 위태롭게 하는 결정을 할 수 있겠느냐고 질문합니다.
볼진은 잠시 고민하지만, 대답합니다.
몸을 보호하고 살아남아 또 싸워나가야 하지만 이는 육신에 대한 이야기일 뿐
가로쉬와 함께 한다면 절대 잃어서는 안되는 영혼을 잃게 될 것이기 때문에
부족을 이끌고 떠나겠다고 말합니다.
이후 로아는 볼진에게 마지막 시험에 들게 합니다.
우선 아버지 센진의 환영과 싸우게 하고, 그 과정에서 엄지손가락이 부러지는 고통을 받습니다.
트롤은 로아의 축복으로 뛰어난 재생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금새 회복되겠지만, 손가락은 기형이 될 정도의 부상이었습니다.
이에 볼진은 자신의 엄지손가락을 잘라버립니다
그 때 로아는 의술사와 싸우는 자신의 환영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의술사는 지금 시험을 함께 받고 있는 친구, 잘라제인이었습니다.
볼진은 슬펐고, 너무나 화가 났지만 부족의 미래를 위해 누구든 상관없이 싸우겠다는 대답을 합니다.
이렇게 볼진은 로아의 시험을 통과하게 됩니다.
3. 듀로타의 건국
로아의 시험을 통과한 볼진은 마을로 돌아오지만, 마을은 이미 바다마녀의 공격을 받아 황폐화된데다가
아버지 센진도 이미 죽은 뒤였습니다.
검은창 트롤은 오크와 함께 배를 타고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볼진은 잘라제인과 함께 이를 돕습니다.
결국 칼림도어에 정착하게 되고, 검은창 트롤은 호드의 일원으로서 아키몬드의 침략을 저지합니다.
이후 검은창 트롤부족은 메아리 섬에 정착하여 살게 됩니다.
듀로타의 건국 과정에서 댈린 프라우드무어 제독이 이끄는 쿨 티라스 함대의 공격을 받기도 합니다만
검은창 부족의 어둠사냥꾼인 로칸이 데려온 렉사르, 챈 스톰스타우트와 함께 이를 격퇴해 내기도 합니다.
이 때 볼진은 렉사르, 로칸, 챈 스톰스타우트를 와이번의 형상으로 바꿔 하늘을 날 수 있게 해 주는 등
주술사로서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4. 트롤의 트롤링
이렇게 프라우드무어를 격퇴하고 좀 평탄하게 살아가나 싶었는데
가장 친한 친구였던 잘라제인이 메아리섬을 장악하여 자신의 영토로 선포하고
섬 안의 검은창 트롤들에게 주술을 걸어 노예로 부리는 등 행패를 부리기 시작합니다.
결국 볼진은 쫓겨나게 되고, 함께 메아리섬을 나온 피난민들은 듀로타 남쪽 해안에 마을을 만들어 정착하게 됩니다.
이 마을이 곧 센진 마을이지요.
그리고 볼진은 듀로타의 수도 오그리마에서 스랄의 조언가로서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대족장이 스랄에서 가로쉬로 바뀌게 되자 충돌하는 일이 잦아졌고, 결국 볼진은 오그리마를 떠납니다.
의술사 잘라제인. 로아의 시험을 함께 받을 정도로 친했지만 부족의 미래를 위해, 시험에서 본 환영대로 볼진은 그와 싸웁니다.
그리고 곧 잘라제인을 물리치고 메아리섬을 수복하여 다시 메아리섬에 정착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트롤 부족 중 잔달라 부족이 구루바시 부족과 아마니 부족을 지원하여 트롤 제국을 세우겠다고 합니다.
검은창 트롤도 회유하기 위해 볼진을 설득하기 시작하는데, 볼진은 이들에게서 등을 돌립니다.
이 때 잔달라 부족의 줄은 "형제들에게 등을 돌리시겠다?" 라며 조롱하지만
볼진은 "호드가 나의 형제다. 전쟁을 일으킨다면 내가 맞서 싸우겠다" 라며 맞섭니다.
조금 의아할 수 있는 일이지만, 애초에 검은창 부족이 고향을 떠나 섬에 정착한 것도 이들에게 쫓겨서 떠난 것이고
무엇보다 호드가 없었으면 검은창 부족은 부족째로 물에 잠겨 버렸을 것이기 때문에
호드와의 의리를 택하게 됩니다.
이에 호드와 얼라이언스 모두에게 도움을 받아 트롤 제국 재건의 야망을 저지하게 되는데
이 때 볼진은 직접 사절로 뛰면서 힘쓰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5. 가로쉬와의 불화
앞서 오그리마에서 나오게 된 계기가 가로쉬와의 불화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잠깐 나왔는데,
오크 우월주의에 빠진 가로쉬는 대족장이 되자 트롤을 빈민가에 몰아넣는 등 차별을 일삼습니다.
이는 볼진에게도 예외가 아니라서 둘의 대립은 극단으로 치닫게 됩니다.
볼진이 오그리마를 떠날 때 가로쉬는 그의 발 밑에 침을 뱉지만
볼진은 참고 고요히 돌아갑니다.
이후 판다리아에 있는 '장막의 봉우리' 북쪽의 사우록 동굴을 정찰하라는 명령을 받고
가로쉬의 부하 라크고르와 동행하게 되나
여기에서 모구들이 사우록을 창조하는 기술을 전쟁에 이용하려는 생각을 듣게 되고
이에 반대하다가 라크고르에게 기습을 당하게 됩니다.
부상을 입은 볼진은 자신이 죽었다고 알리게 하고 판다렌 마을에서 치료를 받으며 숨어 지냅니다.
그 곳에서 수양을 통해 트롤과 호드 사이에서의 내적 갈등을 극복해 내고
수도사로서도 상당한 소양을 쌓게 됩니다.
6. 호드의 대족장으로
완치한 볼진은 가로쉬에 맞서 검은창 부족 저항군을 결성하여 가로쉬에 맞서 싸웁니다.
그리고 이 때 얼라이언스의 국왕인 바리안 린과도 일시적으로나마 동맹을 이끌어 냅니다.
그리고 오그리마 함락 후 , 스랄에게 대족장 자리에 다시 오를 것을 권하지만
스랄은 볼진을 대족장으로 임명합니다.
가로쉬에 맞서는 이들을 모두 규합한 것은 볼진이었고,
호드가 광기에서 해방되도록 한 것 역시 볼진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로서 볼진은 최초의 오크 이외 종족에서 탄생한 호드의 대족장이 됩니다.
자신이 대족장임을 선언하는 볼진. 강한 카리스마가 느껴집니다.
이후 가로쉬에 대한 전범재판이 열리면서 대족장으로서의 면모를 많이 보여줍니다.
얼라이언스와 호드 모두가 용납할 수 있을 변호인으로 바인 블러드후프를 추천하지만 강제하지는 않고
변호인이 된 바인을 실바나스가 도발하여 폭발 직전의 상황이 되지만 이를 잘 중재합니다.
또한 이 전쟁으로 가장 큰 상처를 받았을 제이나에게 편지를 보내어 그녀를 달래주기도 합니다.
재판 중 드레노어로 도망간 가로쉬를 추격하고 강철 호드와 맞서 싸울 때에는
정예 어둠사냥꾼 부대가 호드를 지휘하도록 하고, 드레노어에 직접 방문하기도 합니다.
7. 대족장이여, 편히 잠드소서
그러던 중 아제로스에 불타는 군단의 대규모 침공이 일어납니다.
볼진 역시 호드를 이끌고 전투에 참여하는데, 이 때 군단 악마의 창에 맞아 치명상을 입게 됩니다.
이는 지옥 마법으로 인한 치명상이었고, 결국 볼진은 숨을 거두게 됩니다.
숨을 거두기 직전 실바나스 윈드러너에게 대족장이 되라는 유언을 남기고
실바나스는 화장으로 치러진 볼진의 장례식에서 복수를 결의하며 호드의 대족장 자리에 오릅니다.
신생 호드의 초대 족장인 스랄은 아직 살아있고,
2대 족장인 가로쉬는 여러 가지 범죄를 일으켜 스랄의 손에 처단당했습니다.
그런데 볼진은 악의 세력에 맞서 싸우다가 죽었으니, 어떻게 보면 아직까지는 유일하게 명예로운 죽음을 맞이한 대족장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가장 약한 부족 출신에서 호드의 정상에 선 볼진.
지금까지 볼진의 일대기를 살펴보았습니다.
아제로스에서 가장 진화가 덜 된 트롤 종족,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약하여 고향까지 버려야 했던 검은창 부족.
하지만 그 부족의 지도자는 각고의 인내 끝에 호드의 대족장이 되었고
얼라이언스와 호드를 막론하고 스랄 이후 가장 존경을 받았던 대족장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렇기 떄문에 볼진의 삶은 아제로스가 아닌 지구에 사는 우리에게도 많은 울림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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